러닝용 플레이리스트를 처음 만들 때는 다들 신나는 곡부터 찾죠. 그런데 오래 뛴 사람들의 리스트를 보면 의외로 잔잔한 곡이 섞여 있어요. 템포가 빠른 노래는 몸을 들뜨게 해서 초반 오버페이스를 부르기도 하거든요.
정말 힘이 되는 건 빠른 노래보다 몸에 익은 노래입니다. 수십 번 들으면서 뛴 곡은 전주만 나와도 몸이 그때의 리듬을 기억해요. 어느 코스의 어느 구간에서 이 곡이 나왔는지까지 함께요.
그러니 플레이리스트를 자주 갈아엎지 마세요. 러닝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리스트 하나가, 매주 바뀌는 신곡 리스트보다 오래 갑니다.
러닝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강도가 아니에요. 몸이 덜 풀린 첫 10분, 리듬을 탄 중반, 그만두고 싶은 마지막 구간. 플레이리스트도 그 흐름을 따라가면 좋습니다.
앞쪽에는 서두르지 않게 해주는 곡을 두세요. 중반에는 발걸음과 박자가 맞는 곡들이 이어지게 하고요. 그리고 마지막을 위해 필살곡을 아껴두는 겁니다. 들으면 반드시 힘이 나는, 나만 아는 그 곡이요.
필살곡의 조건은 하나예요. 아무 때나 듣지 않을 것. 평소에 아껴둘수록 마지막 1km에서 꺼냈을 때의 효과가 커집니다. 러너의 플레이리스트는 그냥 음악 목록이 아니라 배분 전략이에요.
매번 이어폰과 함께 뛰었다면, 한 번쯤 그냥 나가보세요. 처음 10분은 어색하고 심심합니다. 그런데 그 심심함이 걷히고 나면 안 들리던 것들이 들려요. 내 발소리의 박자, 호흡의 간격, 바람 소리, 새벽 골목의 정적 같은 것들.
노래 없이 뛰는 날은 몸의 소리가 잘 들리는 날이기도 해요. 오늘따라 발소리가 무겁다든가, 호흡이 유난히 일찍 가빠진다든가. 음악이 덮고 있던 정보들입니다. 컨디션 점검이 필요한 날엔 일부러 이어폰을 두고 나가는 러너도 있어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무음 러닝을 섞어보세요. 음악과 함께 뛰는 날이 더 좋아지는 부수 효과도 있습니다.
밤이나 새벽에 뛴다면 노래보다 먼저 챙길 게 있어요. 귀입니다. 두 귀를 꽉 막고 볼륨을 올린 채 차도 옆을 뛰는 건, 감각 하나를 끄고 뛰는 것과 같아요. 뒤에서 오는 자전거 벨소리, 차 소리는 들려야 합니다.
방법은 여러 가지예요. 한쪽 귀만 꽂거나, 주변 소리가 함께 들리는 오픈형 이어폰을 쓰거나, 차도 구간에서만 볼륨을 줄이는 것. 어두운 시간대일수록 소리는 눈만큼 중요한 안전장치입니다.
노래는 러닝을 도와주는 배경이지, 세상과 차단해주는 벽이 아니에요. 좋아하는 곡을 들으면서도 도시의 소리가 한 겹 함께 들리는 정도. 그게 러너의 볼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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