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안심할 사실 하나. 가벼운 비는 마라톤에 불리하지 않습니다. 서늘한 기온에 몸의 열이 잘 식어서, 쾌청하고 더운 날보다 컨디션이 잘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실제로 좋은 기록들이 부슬비 속에서 나오곤 합니다.
진짜 상대해야 할 것은 비 자체가 아니라 부수 효과들입니다. 출발 전 대기 중의 체온 저하, 젖은 양말이 만드는 물집, 쓸림, 미끄러운 노면. 전부 대비 가능한 항목들이에요. 그러니 비 예보를 본 순간 할 일은 낙담이 아니라 체크리스트 수정입니다.
핵심 준비물 몇 가지. 출발 대기용 일회용 우비(비닐 판초)나 대형 비닐봉투는 필수입니다. 출발 전 30분~1시간 서서 기다리는 동안 몸이 식는 게 우중 대회 최대의 함정이라, 출발 직전까지 입고 있다가 벗어서 지정된 수거함에 버리는 게 정석이에요. 챙 있는 모자도 강추. 얼굴로 흐르는 빗물을 챙이 막아줘서 시야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피부가 쓸릴 만한 부위(허벅지 안쪽, 겨드랑이, 발)에는 바셀린을 평소보다 후하게. 갈아입을 옷과 수건, 비닐백(젖은 옷 수납용)을 물품 보관 가방에 넣어두면 완주 후가 편안해집니다.
빗길 레이스의 주의 포인트는 노면입니다. 페인트로 칠해진 차선과 횡단보도 표시, 맨홀 뚜껑, 다리 위 철판은 젖으면 미끄러워요. 이런 표면 위에서는 방향 전환을 피하고 직선으로 통과하세요. 물웅덩이는 피하는 게 낫지만, 무리한 점프나 급격한 회피가 더 위험합니다. 발이 젖는 건 어차피 시간문제라 받아들이는 편이 나아요.
코너에서는 보폭을 줄이고, 내리막에서는 평소보다 보수적으로. 그리고 보급소 근처 바닥은 종이컵과 물로 미끄러우니 진입할 때 발밑 주의. 요약하면 '급'이 붙는 동작(급가속, 급회전, 급정지)만 빼면 됩니다.
우중 대회의 진짜 위험 구간은 레이스가 아니라 완주 직후입니다. 달리기를 멈추는 순간 열 생산이 끊기는데 몸은 젖어 있어서 체온이 급격히 떨어져요. 결승선을 통과하면 최대한 빨리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몸을 덥히는 것까지가 레이스입니다.
주최 측이 주는 보온 담요나 비닐 케이프는 사양 말고 받으세요. 따뜻한 음료가 있다면 그것도요. 그리고 집에 가서 뜨거운 샤워와 든든한 한 끼. 우중 완주는 같은 거리도 서사가 두 배가 되는 법이라, 그날의 메달은 유난히 이야깃거리가 많은 메달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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