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저장할 수 있는 탄수화물 연료(글리코겐)는 대략 두 시간 안팎의 레이스 강도 달리기 분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러너에게 그 지점이 공교롭게도 30km 부근이에요. 글리코겐이 고갈되면 몸은 지방 연소 위주로 전환하는데, 지방은 에너지 전환이 느려서 같은 페이스를 유지할 출력이 안 나옵니다.
다리가 무거워지고, 페이스가 뚝 떨어지고, 머리까지 멍해지는 것. 러너들이 벽이라 부르는 현상의 생리학적 실체입니다. 정신력의 문제가 아니라 연료의 문제라는 게 핵심이에요.
벽을 만나는 러너의 상당수는 전반을 계획보다 빠르게 달린 러너입니다. 초반 오버페이스는 글리코겐을 예정보다 빨리 태워서 탱크 바닥을 앞당겨요. 반대로 전반을 절제하면 같은 연료로 더 멀리 갑니다.
그래서 풀코스의 페이스 전략은 '전반에 아껴서 후반에 쓴다'가 기본입니다. 전반 하프를 목표 페이스보다 아주 살짝 느리게, 30km까지 여유를 남기며, 남은 힘의 판단은 32km 이후에. 첫 풀코스라면 '30km까지는 워밍업'이라는 마음가짐이 과장이 아니에요.
연료 문제의 나머지 절반은 보급입니다. 레이스 중 탄수화물을 계속 공급하면 탱크 바닥을 뒤로 미룰 수 있어요. 에너지젤이 대표적인 도구고, 대회 보급소의 바나나와 초코파이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일반적으로 40~60분마다 젤 하나 정도의 보급이 이야기되는데, 위장이 받아들이는 양은 사람마다 달라서 훈련에서 검증이 필수예요.
30km 훈련 없이 대회에서 처음 30km를 넘는 게 보통이라, 보급 연습은 최장 롱런(28~32km)에서 실전처럼 해보는 게 중요합니다. 젤을 몇 km 지점에서 먹을지 계획을 세우고, 대회 날 그대로 실행하는 거예요.
대비를 해도 벽은 올 수 있습니다. 만났을 때의 대응도 알아두세요. 첫째, 페이스를 즉시 낮추되 멈추지는 말 것. 걷기와 뛰기를 섞는 것도 훌륭한 전략입니다. 둘째, 보급소에서 탄수화물(이온음료, 바나나, 젤)을 넣을 것. 15~20분 뒤 몸이 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될 수 있어요. 셋째, 목표를 재조정할 것. 기록이 무너졌어도 완주는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기억할 것. 벽을 만나 걸어서라도 들어온 완주는 부끄러운 기록이 아니라 마라토너들이 서로 알아보는 훈장입니다. 벽 너머까지 가본 사람만 아는 세계가 있고, 다음 대회의 전략은 그 경험 위에 세워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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